소피 칼 작 ‘베니스에서의 추적(Suite Venitienne 1980년)’. 이선 제공
예술에서 ‘본다’는 감각은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인식하는 행위를 넘어서, 이해하고, 해석하며, 감응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다. 즉, ‘본다’는 건 단순한 감각적 수용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주체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만약, 시각장애인에게 예술은 단순히 ‘보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 오히려 감각의 전환과 확장된 기억 속 이미지와 경험을 결합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I met people who were born blind. Who had never seen.
I asked them what their image of beauty was.
“나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사람들을 만났다. 전혀 본 적 없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아름다움에 관한 그들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물었다.”-Sophie Calle
사진작가 소피 칼(Sophie Calle)은 1953년 프랑스 파리 출생의 설치미술가, 개념미술가이기도 하다. 독학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26세에 처음 사진을 배우게 된 그녀는 1979년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추적한 작품 ‘베니스의 추적 Suite Venitienne’(1979) 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고, 1980년 11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잠자는 사람들’로 대중들에게 유명해진다. 사진과 이미지로 이루어진 소피 칼의 작품들은 ‘사진-소설’ 형식으로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2004년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프랑스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호텔 L’Hotel’(1981), ‘주소록 The Address’ 등이 있다.
작가 작업의 특징으로 대부분 작업의 시작이 ‘우연히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베니스의 추적 Suite Venitienne’(1979)에서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 남자를 추적하고, ‘호텔 L’Hotel’(1981)에서는 호텔 객실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며 ‘우연히’ 그곳에서 머물다 간 손님을 기록하고, ‘주소록 The Address’(1983)에서는 ‘우연히’ 길에서 주운 주소록을 가지고 그 주소들의 주인에 대해 탐문한다.
소피 칼은 작업을 통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을 스물세 명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미(美)’의 개념과 아름다운 이미지에 관해서 질문한다. 작가의 사진집 ‘블라인드 The Blind’는 기존 사회가 정한 또는 의료적 관점에서 장애를 대하는 미행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The Blind’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약 25년 간 소피 칼이 시각장애인들과 협업한 총 세 개의 프로젝트로 이뤄진 사진집으로 알려져 있다. 책에서 작가의 질문과 그들(시각장애인)의 대답은 이미지와 텍스트, 점자로 기록되었고, 대답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는 컬러사진으로, 그들의 얼굴은 흑백사진으로 남겨 작품을 구성했다. 작가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들이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개인적 경험-길을 건널 때 한 시각장애인이 다른 이에게 ‘아! 나 어제 아름다운 영화를 봤어요.’ 하고 말하는 걸 들었을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업이 발표된 후 많은 평론가들과 관람객들은 “작업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고 비판받으며,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작가는 “어쩌면 ‘선을 넘은 것 같다’고 느꼈던 건 저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예요. 정작 작업의 주체가 되었던 시각장애인들의 대답을 살펴보면, 그들은 결코 발끈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이었어요.“ 라고 전했다.
소피 칼은 인터뷰한 사람의 초상을 찍고, 그들이 아름답다고 말한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거나 수집해 나갔다. 앞의 한 시각장애인 남자의 대답과 그 이미지가 첫 번째 작업에 해당한다. 한 남자의 경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제시하며 그가 생각하는 그림 속 보트와 바다를 설명한다. 하지만 칼이 제시한 이미지가 시각장애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일치하는가? 그것은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소피 칼 작 ‘블라인드The Blind’. 이선 제공
작가 작업의 공통점은 시각장애인들이 진술한 이미지와 소피 칼이 수집하거나 촬영한 이미지는 동일할 수 없고, 얼마나 다른지 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이미지의 결함과 불일치를 통해 대중들은 당연하게 ‘본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보여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발견하게 된다. 우리와 다른 신체의 결함을 가진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그 과정은 어떤 설명도 없이 자연스레 상상되는 초상과 글, 그리고 이미지를 편견 없이 연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과 글’이라는 두 가지 매체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을 표현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사진과 글이 담긴 작품을 통해 그 (사회적) 간극을 깨닫는다. 우리가 간극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마다 같은 질문에도 기억하고 진술하는 이미지가 너무나 다르고, 작가가 진술에 따라 수집한 이미지조차 시각장애인들 각자가 가진 이미지와 동일한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속 모델들은 비록 시각장애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모두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와 같은 존재였다.
소피 칼 작 ‘바다를 바라보다 Voir la mer’. 이선 제공
‘블라인드 The Blind’ 사진 작업을 통해 작가는 꾸준히 스스로와 관객에게 질문해왔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 사이의 간극을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간 기록의 대상을 몰래 쫓고, 사진을 찍고, 대상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만이 대상을 ‘봐 왔고’, 대상은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블라인드 The Blind’는 자신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다가가 만나야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하는 행위적 작업이었다. 이는 곧 기록의 대상에게 더 이상 ‘익명’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며 두 가지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그 나름의 새로운 방식이었을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작가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일 수 있도록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간극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과 글을 활용하여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구축한 소피 칼의 세계를 이해하게 해준다. 또한 현실과 허구, 문학과 예술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포스트모던 (Postmodernism), 탈근대주의(脫近代主義) 예술 사조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소피 칼 작 ‘바다를 바라보다 Voir la mer’. 이선 제공
시각장애인의 각자의 경험과 상상이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이 가진 사회에서 규정한 사실이 아닌 ‘심상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소피 칼은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떤 이미지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조화로운 형태나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방식의 결과를 얻었다. 대부분의 이미지가 시각과 관련되어 있었지만, 일부는 다른 감각을 중시하며 청각, 후각, 촉각, 감정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의 작업과 작업노트를 살펴보며 흥미로운 지점은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시각 외 다른 감각을 통해 경험과 상상이 결합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를 인지하고 타자에게 전하는 방식이 마치 예술가가 창작을 하는 개념과 닮아있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더불어 소피 칼은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무엇인지 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마지막 시각적 경험을 매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는 충격 상황에서 편도체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덕분에 장면이 뇌 속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사진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시각장애인들이 상상하는 이미지는 글, 점자, 색, 형태를 통해 구현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모두에게 ‘보고 싶다’는 욕망이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반복 충동은 상실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블라인드 The Blind》는 완성 작품이라기보다 끊임없이 ‘개념과 관점’을 만들어내는 개념 미술(Conceptual Art)로 해석되며, 이후 등장한 프랑스 문학사조인 ‘누보 로망(Nouveau Roman)’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현대 철학에서 문화기호학-텍스트의 다의적 의미를 강조했고 ‘사랑의 단상, 1977’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정리했었다.
시대의 예술가가 타자의 시선과 이야기를 소재로 보여주는 독자적인 예술의 접근방식은 현대미술을 접하는 관람객들에게 시대의 불온전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진리의 본질을 가정하지 않도록 영감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