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소통하는 창은 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손과 귀를 통해서도 향유할 수 있고 이를 담아내는 마음의 그릇과 모양에 따라 다양한 감성의 켜와 결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강하미술관에서 오는 10월30일까지 열리는 '모두의 미술, 소리와 미술관'전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예술'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자리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5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사업'으로 마련된 전시회는 볼 수 없지만 만질 수 있는 방식, 들을 순 없지만 볼 수 있는 감각, 감정을 통해 설치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미술관에서 만나 예술적 경험과 일상적 활동을 연결하고 문화 포용성과 다양성을 체감하는 데 뜻을 뒀다.

미술관측은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장애인단체와 미술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 회의를 수차례 거쳤다. 장애인 관람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모두가 이용 가능한 '모두의 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작품 설치는 물론 각종 자료와 동선 등을 꼼꼼히 준비하고 점검했다. 어렵지 않은 용어와 큰 글씨로 적힌 전시안내문, 수어 해설영상, 작품 음성해설을 준비하고 각각의 작품 앞에는 점자 블럭을 설치했다.

'우리의 겉모습은 다르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예술이라는 문으로 서로의 감각과 감정을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를 기획하였습니다.'

전시 안내문은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글자 크기와 배경 색깔은 물론 문장의 길이와 단락까지 고려해 저시력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게 이선 학예실장의 설명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손과 코, 귀 모양의 픽토그램이 부착됐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들을 수 있다는 표시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접근성 테이블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테이블에는 전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점자 워크북과 전시장 안내 촉지도가 준비돼 관람 전에 전시장 구조를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다.

전시에는 문선희(사진), 신미경(조각), 장전 프로젝트(AI미디어아트)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은 관람자들이 또 다른 감각을 확장해 느낄 수 있도록 기존 작품을 무장애 전시작으로 각각 재구성했다.

문선희 작가는 '고라니 얼굴'을 소재로 한 사진작품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사진 옆에 설치된 '촉각 작품'을 만지면서 입체적인 고라니 얼굴 형태를 느끼고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한편에는 시각, 청각장애인들이 사진 작품을 감상하는 음성자막 영상이 설치됐다.

신미경은 '비누'로 서양의 조각이나 동양의 도자기, 불상 같은 유물을 조각하는 작가다. 작품은 비누로 만들어져 시간이 지나면 녹거나 닳아 없어질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전시된 '천사', '풍화 프로젝트' 등을 가깝게 들여다보면 작품의 일부가 닳거나 녹아서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비누 특유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원형 좌대 위에 놓인 '육체를 떠난 영혼'은 관람객들이 석고붕대의 작품을 만지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자리가 된다.

장준영 작가와 전지윤 작가가 함께하는 예술가팀 장전 프로젝트는 '랜덤 포레스트'를 내놓았다. 관람객의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표정을 카메라로 인식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기쁨과 즐거움, 우울함 등을 '자신만의 감정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나오면 마지막으로 신미경 작가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관람객은 세면대에 설치된 비누 조각 작품으로 직접 손을 씻으며 촉각과 향을 체감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미술관측은 전시기간 동안 도슨트의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병행할 예정이다. 문선희 작가는 시각장애인협회와 팀토크를 진행한다.

이선 학예실장은 "코로나 19이후 개인의 삶과 환경 등이 중요하게 됐는데 우리가 어떻게 타자를 이해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다"며 "관람객들의 감상 소감을 자료로 남기고 전시 후에는 점자 워크북을 전자도서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강하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 문의는 (062)674-8515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