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
80년 5월 자유를 갈망하던 작가의 시선
이강하 작가 소장 작품전 '응시'
시대별 대표작품. 기록물 선봬
내달 10일까지 이강하 미술관
이강하 ‘맥-아’
1980년 5월 대학에서 예술가 꿈을 키우며 장래가 촉망되던 한 청년은 계엄군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불의에 맞서 싸웠다. 무기고를 털고 총을 들었다는 사유로 전과자 신분이 된 청년은 한 평생을 자유가 제한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세상을 향해 억울함을 외치던 목소리는 묻혔고, 무시됐다. 그리고 43년만인 지난 2023년 12월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세상에 없었다. 이강하 작가의 삶을 녹진하게 풀어낸 이강하 미술관 소장작품전 ‘이강하 응시 1984~2024’가 이강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5·18 민주화운동 이후 1980년대 작품부터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2007년 ‘무등산의 봄’ 등 시대별 대표 작품 5점을 통해 이 작가의 생전 시선을 추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보존사업으로 선정돼 작품이 복원된 ‘맥-아 ’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나무발 사이를 벌려 눈치를 살피는 남성이 주위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가가 1983년에 작업한 ‘무제-자아’다. 그림 속 남성의 시선은 어딘가에 쫓기듯 불안하다. 실제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 참여로 유죄판결을 받고 은둔자 생활을 했다. 경찰은 작업실과 자취 방을 뒤지며 이 작가의 뒤를 밟았다. 그림은 당시 작가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 그의 시선을 따라 본전시로 향했다. 작게 꾸며놓은 작가의 작업실. 벽면에 걸린 붓과 가구 위에 노인 연필과 캔버스는 작가가 생전에 사용한 손때 묻은 소품이다. 금방이라도 작가가 달려와 한폭의 그림을 그릴 듯하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의 육성이 담긴 영상과 5·18 당시 무기고를 털고 총을 들었다는 사유 등으로 특수절도 등 6개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지난해 광주고등법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판결문 등의 기록도 살펴볼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복원한 작품‘맥-아’도 인상 깊다. 노승이 한 곳을 응시하고 나무발 뒤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렇듯 80년대 작업한 작가의 작품에는 나무발이 등장한다. 발의 뒤편에는 에밀레종 등 다양한 소품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나무발’은 억압 속에서 자유로 넘어가고 싶은 작가의 이상향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발을 자세히 보면 틈이 벌어져 있다. 이는 발을 비집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대작을 마주하게 된다. 가로 1,270cm 의 작품은 총 7개의 판넬으로 나누어져 있다. 작품의 테두리에는 흰색 황색 갈색 등 인종의 피부색을 대표하는 3색 줄을 엮어 액자 프레임으로 탄생했다. 그림 한가운데는 무등산이 중심을 잡고 있다. 작가는 무등산을 ‘광주의 어머니’, ‘5·18의 목격자’ ‘5·18의 증언자’로 봤다. 그림에는 알몸 상태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웅크려 앉아 있거나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등 제각각이다. 여성들은 광주시민을 지켜낸 신과 같은 존재로, 누워 있는 여성은 과거, 앉아 있는 여성은 현재, 서 있는 여성은 미래를 상징한다. 무등산과 여성들을 이어주는 비단길에는 영원을 상징하는 생명초도 숨어져 있다. 5·18 당시 무등산에서 죽어갔던 시민들의 영원을 달래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과 살아있음에 미안한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끝으로 2007년 마지막 작품인 ‘무등산의 봄’으로 그의 시선은 끝을 맺는다. 이 작품 속에선 자주 등장하던 ‘나무발’도 없고, 화풍도 밝다. 수 십 년간 광주의 시민과 이 작가에게 겨울이던 ‘무등산’이 어두운 상흔을 지나 따스한 봄을 찾길 바란다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을까. 전시는 내달 10일까지.
/ 이나라 기자
/ 기사 URL http://www.jndn.com/article.php?aid=1707903717379799115
